이야기/후기

부산, 인천, 그리고 지산. 3일간의 기록.

노리. 2013. 8. 7. 10:56

올 봄, 락페 일정들이 속속 뜨면서 제법 설레었더랬다. 작년엔 이런저런 사정으로 제천국제음악영화제와 슈퍼소닉 하루 간거 말고는 제대로 된 여름 락페를 즐기지 못했고, 때문에 올해는 아주 제대로 질러주겠다고 마음을 먹었거든. 그리고 이리저리 떠도는 풍문에 실려오는 금년 방문 예정 라인업이 상당했기 때문에 뜨기만 해봐라 내가 다 섭렵해주지!라고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펜타포트와 지산락페는 애초에 제대로 계획중이었다.


지난해 라디오헤드가 와서 회의하다 말고 튀어나와서 얼리버드티켓까지 잡는 수고를 했음에도 이래저래 맘이 동하지 않아 버렸던 지산밸리락페는 안산으로 옮겨갔고, 떠오른 라인업은 그닥 내 취향이 아니어서 접고 전통의 펜타와 신생 "지산월드락페"를 정조준했더랬지. 당연히, 예전처럼 1주일 차이로 진행이 될 것으로 믿고 말이지. 당연히. 그런데 오호 통재라... 펜타포트 얼리버드를 잡고 지산월드락페 티켓을 확보하고 신이나서 레슨가서 선생님과 얘기를 나누는데 선생님이 그른다. "근데 올해 두개 겹치지 않아요?"


..............아놔. 거기서부터 사단이 시작된거지.


뭐때문인지 펜타포트가 예년보다 일정을 일주일 늦추면서 뒤늦게 일정을 발표한 부산락페까지 세개가 다 겹쳐버리는거다. 뭐 부산락페야 지역락페고 해외 밴드들이 몇 오긴 하지만 글로벌 페스티벌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니 굳이 따지자면 펜타포트 VS 지산이 되어버린 건데, 일단 나에게는 그 부산락페까지 나중에 큰 변수가 되어버리고야 말았으니, 두둥.


전체 라인업이 다 뜰때 까지만 해도 펜타와 지산을 어느쪽이든 2:1로 나누어 가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라인업이 어떻게 들어가는지 보고 적절히 배분하여 한 곳에 이틀, 한 곳에 하루 있어야지. 하는 마음이었달까. 그리고 그 말대로 일자별 라인업이 뜰 무렵에는 펜타에 금,토 있고 지산에 일요일날 가자는 것으로 마음을 굳혔더랬다. 일단 금요일의 지산에는 위저가 있었고 펜타에는 포르노그라피티와 들국화가 있었거든. 위저도 매우 매우매우매우매우 아까운 라인업이지만 한때 내 플레이리스트를 꽉 채우고 있던 포르노그라피티를 처음 실제로 보는 기회를 놓칠 수 없었던데다가 들국화의 작년 지산 무대도 못본 마당에 이번 펜타까지 못보는 건 좀 가혹한 것 같아서. 때문에 그럼 펜타,로 마음을 굳히고 인천에 숙소를 알아보고 이래저래 일정을 짜면서 설레어하던 와중에... 두둥, 타임테이블이 떴는데.


말하자면 빠순심이 나를 망친거지.

부산 락페 금요일 서브헤드라이너로 딕펑스가 들어간거다.

펜타포트에 나오니까 그거면 됐어,라고 생각했는데 토요일의 펜타포트 메인스테이지에 서는 딕펑스는 두시 반, 첫번째 라인업..

......나의 밴드가 야간에 락페무대에 서는 것을 언제 보겠나, 싶은게 갑자기 머리가 확 도는거지.


그래서 사고를 쳤다. 후회할지도 몰라, 하면서 냅다 기차표를 지르고 부산역앞에 숙소를 잡고 수수료 물어가며 펜타포트 티켓 환불하고 다시 사고 기타등등의 삽질을.

진짜 후회할 짓이 뭔지는 알지도 못한채 말이지.


하여 시작된 3일간의 고행...





8월 2일. 부산 삼락 생태공원. 부산 락 페스티벌.


    • 대중교통편을 이용하여 공연장까지 도보로 이동하는 거리 : 20분
    • 셔틀버스 : 없음
    • 공연장 부대시설 : 모름
    • 공연장 내부동선 : 모름
    • 관객 전투력 : ★★★★★


사실 국제규모의 페스티벌은 아니지만 들어온 명성도 있고 국내 라인업이 워낙 괜찮아서 망설임없이 지른 면도 없잖아 있다. 일행이라도 있으면 그렇게 무리해서 다니진 못했을텐데 어차피 혼자갈거 홀가분하게 가는거지 뭐 오홍홍 하면서 질러버렸달까. 하나 걱정됐던 건 작년에도 수십명이 실려나갈 정도의 폭염이었는데, 그래도 장마철이라 비예보도 있고 하루종일 흐릴거라는 예보도 있어서 그거 믿고 간거지. 완전 속아서.


부산 내리자마자 내려쬐는 햇살은 당연히 나를 멘붕으로 밀어넣음 ㅎㅎㅎㅎ 모자고 선글라스고 아무것도 안가져왔는데 짐될까봐? 오전에 부산에 비온대매 기상청 이님들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역앞의 숙소에 짐 맡기고 카메라만 챙겨서 출동. 지하철은 한 번만 갈아타면 되니 문제가 없는데... 내려서 보니 햇볕이 이게 장난이 아닌거다. 아직 1시도 안됐는데 벌써부터 이 땡볕 아래서 구워질 생각을 하니 앞이 깜깜하여 가는 길에 쇼핑몰에 들러서 챙모자 하나를 사고, 열심히 걸음을 옮겨 행사장으로 가는데...


....가도가도 끝이 안나. 공연장은 저 멀리 보이는데 그늘은 한점이 없고 가도가도 길에 끝이 안보여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정도 거리면 셔틀이라도 운영해야하는 거 아닌가. 죄다 차끌고 오는것도 아닌데 너무 가혹하다,싶을 정도의 거리였음. 말이 좋아 15분거리지 너무 더워서 천천히 걷다보니 20분은 넘게 걸리더라. 가는 도중에 얼음물 두 병 구매.


들어가보니 펜스앞에 벌써 사람들이 진을 쳤는데 돌출무대 구석쯤에 빼꼼한 구석이 있길래 그쪽으로 자리를 잡음. 내가 아는 김태현이라면 돌출무대 앞으로 나가서 절대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쿨럭; 한두번 당해봤냐 인제는 안속는다는 기분으로. 근데 이게 펜스 바로 옆일 뿐이지 내가 펜스를 잡은게 아니라서 지탱할 구석도 없고 하여 가져간 모노포드를 지팡이삼아 버텨보았다. 밴드들의 악기 셋팅과 가벼운 리허설이 지나고 두시 반이 되어.. 그니까 내가 자리를 잡고 선지 한시간만에 넘버원코리안을 필두로 공연 시작.


넘코는 역시 에너지만땅 ㅋㅋㅋㅋ 아 근데 이날따라 베이스치는 방주원씨가 너무 심하게 멋져서 미치는 줄 알았네? 내가 주로 넘코를 본게 클럽타이다보니 그 찌깐한 무대에 사람 바글바글 올라가있는 것만 보다가 이 넓은 무대를 휘저으며 다들 환하게 웃으며 공연하는걸 보니 진짜 느무 멋져서 말이지. 얼른 정신을 차리고 사진을 정리하여 올려드리야되는데 말이지요 ㅎㅎ 


아싸는 제법 인기가 많더라. 탑밴드버프는 예전에 사그라들었지만서도, 아무래도 그들이 가진 힘이 있으니까-로 해석해도 되는 것일까. 슈스케 출전이 오히려 독이되어 많이 안타까웠는데 그래도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기도 하여 기분이 괜찮았음. 연식이는 여전히 찍기가 힘들고요 ㅎㅎㅎㅎㅎ


도대체 킹스턴루디스카가 왜 이타임이야 -0- 하면서 맞이한 킹스턴. 관악기들 앞으로 나오면서 막 연주하고 할때까지만 해도 신이 나서 나도 막 흔들흔들 춤추고 놀았는데 문제는... 이 때 터졌다. 기어이 더위를 먹은 것.


워낙 체질이 더위에 약하고 어릴때부터 조금만 오래 햇볕에 노출되면 가벼운 일사병증세를 밥먹듯 앓아서 바로 알아챘다. 이건 심상치 않다. 갑자기 눈앞이 핑핑 돌고 속이 메슥거리면서 헛구역질이 나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데 정신을 못차리겠는거라. 바닥이나 멀쩡하면 말을 안하겠는데 벌써 무대앞에서 혹은 살수차에서 미친듯이 물을 뿌려놔서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늪이 되어있는데 그 위에 앉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서있자니 죽을 지경이고... 이대로 포기하고 뒤로 빠져야하나 고민을 했는데 또 여기까지 와서 그러기는 느무 싫은거다! ㅠㅠㅠ 내가 무슨 맘으로 펜타를 포기하고 여기엘 왔는데... 그래서 결국 신고 간 신발(다행히 바닥이 좀 높은 신발이었다)을 놓고 그 위에 깔고앉아서 최대한 머리를 낮추고 눈감고 심호흡. 자연스레 사람들덕에 생긴 그늘 아래에 앉게 되어 몸을 식히는데는 무리가 없었다. 바닥도 진창이 되긴 했지만 여튼 지열이 올라오진 않으니 오히려 시원해서 그대로 킹스턴루디스카 끝나고 다음 셋팅 진행될때까지 앉아서 휴식 & 휴식. 그러지 않으면 내가 진짜 죽을 것 같았거든; 미안해요 킹스턴... 서울에서 봐요-_ㅜ


제니퍼...머시기...하는 일본 밴드 애기들은 ㅎㅎ 뭔가 보컬이 말끝마다 풔킹을 씹어가며 되게 롸킹해보이려고 했는데, 아 그러려면 일단 의상부터 챙겨 ㅋㅋㅋ 꽃무늬 하와이언바지까진 괜찮았는데 양말에 슬리퍼신고 뭐하는 짓이야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아 보다가 자꾸 웃겨서 ㅠㅠ 


톡식은... 내가 리허설을 열심히 찍고있었더니 내내 옆에 같이 서서 가끔 말도 걸며 챙겨주시던 옆자리 일행들 중 펜스잡고있던 언니 한 분이 톡식때만 자리 바꿔주시겠다면서 양보를 해주셨다. 아 완전 무지 매우 감사 ㅠㅠㅠㅠㅠㅠㅠ 덕분에 편하게 서서 잘 찍었더랬지. 스롱이 파랑머리 너무 잘어울리더라. 애는 참... 아무리 봐도 아이돌 비주얼이야. 정우는 갠적으로 팔 그렇게 긴거 제발 안입었음 좋겠습니다. 망또같은건 나쁘지 않은데, 팔 긴거 입으려면 아예 긴거 입고 아님 아예 나시입어. 오부는 아줌마같단말이야 ㅎㅎㅎㅎㅎㅎ 연주도 그렇고 공연 분위기도 그렇고 매우 좋았음!!


옐몬. 아 옐몬. 내가 옐몬을 그렇게 허무하게 서서 멍때리면서 보게될 줄이야. 저 지지난주에 옐몬 공연보다가 헤드뱅을 하도 심하게 해서 목이 나간 여잔데 말입니다 ㅠㅠ 하지만 그 날씨에 또 들고 뛰고 노래부르다간 정말로 그길로 실려나갈까봐 극강의 체력안배.. 서울에서 봐요 오파들 ㅠㅠㅠ


그리고 그 타임이 끝나고 해리빅버튼-딕펑스-노브레인이 남자 갑자기 뒤에서 슬슬 압박이 느껴짐. 에이 그래도 락펜데 앞에 밀고 그러기야 하겠어, 생각했는데 그건 엄청 큰 완전 오산이었습니다.


해리빅버튼이 무대에 올랐는데, 난 당연히 기타 사운드 체킹하는게 박주영씨인 줄 알았는데 박주영씨가 안보인다?? 소식을 확인해봐야겠지만... 만약 박주영씨 탈퇴한거라면 참 안타깝다. 난 그 퍼포먼스도 되게 좋아하고... 일단 해빅 초창기부터 같이 무대 지켜오시던 분인데, 왜 나가셨지 싶은.. 안타깝. (뒤져보니 탈퇴도 아니고 해고네. 무슨 일이 있었던거지 ㄷㄷㄷ;;;) 여튼, 형님들의 음악은 여전히 묵직하고 힘있고 파워풀하고 좋았다. 처음으로 봤다며 해리빅버튼 깃발이 등장했다고 해맑게 웃는 성수횽님 짠했음. 화이팅하시오.


그리고, 딕펑스의 무대. 갑자기 뒤에서 밀려드는 압박... 해리빅버튼때 이미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반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버티고 서있던 나는 기어이 이성을 놓았고... 찍고 보고 놀기는 했으되 도대체 내가 무얼 했는지는 기억에 남아있는게 없다. 다 끝나고나서 노브레인이고 뭐고 얼른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뒤를 돌았는데 정말 무섭게 밀어대는 사람들 때문에 두 번을 넘어질 뻔. 그 자리에서 넘어지면.. 바닥은 진창 뻘밭인데다가 뒤에는 끝도 안보이는 인파다. 밟히기 시작하면 그대로 인명사고라는거지. 아찔한 기분으로 고개를 들고 어떻게든 나가려고 길을 찾는데 정말 뒤에서 눈을 부릅뜨고 앞으로 밀고 들어오는 남자애와 눈이 딱 마주쳤다. 순간 대 폭발. 여기서 사람 넘어지면 어떻게 되는지 아느냐고. 나가면 공간이 생기는데 그리고 들어오면 되지 그러고 무작정 밀면 어쩌냐고 정말 성질을 있는 한도껏... 그러니까 잠깐 멈추더라. 그 틈에 나오면서 정말 울뻔했다. 내가 왜 이러고 사서 고생을 하나 싶어서 ㅠㅠ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모노포드 길게 빼놓은걸 그냥 들고 나와서 아마 뒷사람들 엄청 찔리고 긁히고 맞았을거다. 다 빠져나와서 정신차려서 그 꼴을 보고는 한심해서 허허 웃었네. 


아무도 나한테 가라고 등떠밀지 않았고,

아무도 나한테 그렇게 힘들게 내내 거기서 버티고 서있으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그저 다 내 선택이었고 내가 결정한 일이라는게 너무 속상하고 서러웠다.

음악은 즐기고 듣고 노는건데 뭐하러 내가 이렇게 전투력 불태우며 와서 몸상하고 자존감 뭉개가며 이러고 있나 싶은거이 ㅎㅎㅎ

내가 너무 한심해서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주저앉아서 짐챙기고 그 먼길을 다시 걸어나와 택시타고 숙소로.

택시타러 나가는 길에 멀리서 노브레인 노랫소리와 사람들 환호소리가 들리는데 참 재밌어보이더라.

....그래, 공연은 저렇게 보는건데. 형님들도 서울에서 만나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쫄딱 젖어서 중얼중얼 노래 따라부르면서 터덜터덜 걷는 모습이 얼마나 괴기스러웠을꼬 ㅋㅋㅋ


편의점에서 라면과 맥주와 기타등등을 사다놓고 정말 폭풍 먹방을 찍고 진흙 투성이가 된 옷과 신발과 기타등등들을 정리하고 폭풍 수면. 

나에게는... 아직 이틀이 남아있었다.


그 날 저녁 펜타포트의 들국화 소식을 보며 눈물지었던 건 비밀.

하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8월 3일. 인천 송도 근린공원.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 대중교통편을 이용하여 공연장까지 도보로 이동하는 거리 : 모름. 제법 멀다고 들었음.
    • 셔틀버스 : 있음. 서울에서 1시간 소요.
    • 공연장 부대시설 : 먹거리 요소도 다양하고 행사 굿즈도 쏠쏠한 것들이 많았음. 
    • 공연장 내부동선 : 매우 안좋음. 다 멀어. 어디서 어디를 가도 다 멀어....
    • 관객 전투력 : ★★


아침에 일어나서 꼭 조식을 챙겨먹으리 다짐했는데 생각보다 준비가 늦어짐. 7시 30분 기차 예매해둔 주제에 7시 16분에 호텔 식당에 도착하는 패기를 보임. 정말 마시듯이 밥을 흡입하고 호텔에서 체크아웃 한 것이 7시 26분. 짐 끌고 미친듯이 뛰어서 기차에 탑승한 것이 7시 29분. 하아, 나란 인간 -_-;;;;


여튼 서울에 무사히 도착하여 일기예보따위 개무시한 날씨를 보며 서울역에서 장화와 모자를 구입하여 셔틀버스 승차장으로 이동. 버스타고 한시간을 이동하니 펜타포트 행사장에 도착했다. 셔틀 승강장에서 매표소 입구까지는 걸어서 5분 거리였으나... 미리 도착한 일행의 말대로 동선이 엄청나게 꼬여있음 ㅎㅎㅎㅎ 그냥 허허벌판 황무지에 이것저것 설치해둔 것이다보니 지형지물이 확실하게 구분되는 것도 아니라서 처음 가서 좀 헤맸다. 


물품보관소 가서 짐맡기려다가 현금이 없어서 일단 메인 스테이지 앞에 있는 일행한테 들렀다가 돈찾아서 다시 물품보관소 가서 짐맡기고 메인스테이지 앞으로 돌아오는데 15분쯤 걸린 듯;;; 넓기는 오지게 넓은데... 좀 짜임새 있는 동선 구성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


무대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크더라. 아마 체조경기장급이 아닐까 싶다. 콘크리트로 기초공사가 되어있는 걸 보니 정말 두고두고 쓰려는 심산인 것 같아 보였는데, 여튼 나빠뵈지는 않았다. 도착해서 두시간 정도를 메인스테이지 앞에서 대기하면서 기다렸는데 전날 부산사태를 겪어서 그런지 ㅎㅎ 그정도는 아조 껌같이 느껴졌음. 심지어 딕펑스만 보고 뒤로 빠져서 페스티벌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니 몸도 맘도 너무 가벼운거이 ㅠㅠ 


도대체 한걸음 안이나 밖이나 무슨 차이가 있다고 세팅하는동안 들어오지 말라고 막아둔 덕에 불만이 있는 한껏 증폭된 가운데 2시경 스테이지 바로 앞 펜스로 입장. 메인 스테이지에 첫 진출한 딕펑스를 그예 만나고야 말았다. 내가 니네의 야간 페스티벌 공연을 보겠다고 어제 무슨 짓을 했는지 아니 ㅠㅠ 라고 속으로 울며, 얼른얼른 커서 지산, 혹은 펜타의 메인에 서브 헤드라이너급으로 성장하기를 마음속으로 격하게 빌었다. 


.....부산에서 잔뜩 젖은 카메라 장비들에 성에가 끼어서 리허설 장면은 눈앞에 뻔히 두고도 하나도 찍지를 못한 것은 통한.

태현이랑 현우랑 똑같은 반바지 입고 쭐래쭐래 다니는거 너무 귀여웠는데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뭐 내팔자가 그정도려니....

공연은 영상으로 사진으로 잔뜩 남겨놨으니 패스.. 


이후 함께한 G님이 사인받는 것을 기다려 나와서 카메라를 싹다 물품보관소에 때려넣고 밥이랑 안주랑 사서 맥주마시고 돌아다니면서 유유자적. 밥먹으면서 피스 공연을 즐기고 맥주사들고 드림스테이지 가서 소란 공연 보면서 뛰어놀고 돌아와보니 펴놓은 돗자리에는 그늘이 져 있어 그 위에 앉아 뜨거운 감자 공연을 즐기고, G님이 일이 있어 돌아가고 나서는 Story of the year 노래 들으면서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세상에 그 노래를 들으면서 잤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서브헤드라이너는 YB. 그리고, 헤드라이너는 나의 스웨이드.


토요일에 지산이냐 펜타냐를 두고 진짜 엄청 고민을 했는데- 결국 펜타를 택한 것은 팔할이 스웨이드 탓이었다. 물론 나는 플라시보의 광팬이기도 합니다만 ㅠㅠ 2006년 1회 펜타에서 한 번 영접한 적이 있어요 플라시보는.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데 그래도 한 번은 봐놔야지 하는 생각으로 브렛의 스웨이드 선택. 그리고, 후회는 없다. 늘 귀에 꽂고 다니던 음악들이 한번에 터져나올때의 희열은 아무도 몰라 아무도 몰라 ㅠㅠ


결국 녹아내릴 것 같은 몸으로 100분을 꼬박 서서 스웨이드를 보고 나온 덕에 몸은 아작이 났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음이다.

어쩜 그 나이에 그런 열정적인 무대를 보일 수가 있을까. 그렇게나 섹시할 수 있을까. 아아 브렛 ㅠㅠㅠㅠㅠㅠ


다들 웃고 즐기고 편안하게 늘어져 서서 뮤지션을 맞이하고 함께 즐기는,

이게 바로 페스티벌이 아닌가 싶었다.

장소가 더 정비되고 동선이 더 깔끔해지면 내년에는 정말 더 좋아지겠구나, 역시 믿고보는 펜타인가-하는 마음으로 퇴청.

내일은, 이 죽음의 일정의 마지막, 지산이 남아있다.





8월 4일. 지산 리조트. 지산 월드 락 페스티벌.


    • 대중교통편을 이용하여 공연장까지 도보로 이동하는 거리 : 복잡하고 멀다. 차로 이동하던지 셔틀을 타던지 해야함.
    • 셔틀버스 : 있음. 서울에서 1시간 소요.
    • 공연장 부대시설 : 먹거리 요소가 다양했음. 파라솔 등 없이 잔디밭에서 자유롭게 먹을 수 있게 한 것은 편할수도 있고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 지산 리조트의 기반시설이 워낙 좋아서 화장실이나 각종 부대시설 등은 세개 중 최고수준.
    • 공연장 내부동선 : 매우 괜찮음. 직선으로 이동하는 동안 모든 것이 다 배치되어 있음. 무대간 음간섭도 적음. 
    • 관객 전투력 : ★


아침에 돌덩이같은 몸을 이끌고 나섰는데 결국 살짝 지각하여 버스에 미친듯이 올라탔으나 제대로 확인을 하지 못해 돌아오는 티켓을 받지 못하는 사단 발생... 뭐 이건 나중에 차차 얘기하도록 하고, 여튼 함께하기로한 L양과 무사히 조우하여 행사장 도착. 일단 카메라를 챙겨가긴 했으나 촬영이 가능할지는 확실치가 않아서 분위기를 보기로 함.


진짜 이렇게 전투력 없는 관객들 처음 봤다. 자미로콰이 무대 빼고는 펜스에 욕심내서 붙어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ㅋㅋㅋㅋㅋㅋ 맘먹고 셋팅하는 동안 일찍 들어가면 그냥 잡는게 펜스... 하여 톡식(은 펜스 잡았다가 그냥 뒤로 빠졌고), 와이낫, 시나위 무대를 모두 펜스를 붙들고 서서 미친듯이 뛰어놀면서 봤다.


확실히 지산에 들어서서 느꼈다. 세군데 페스티벌 사이트를 돌아다니는 와중에 정말 최고는 지산이구나, 하는. 장소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지산을 따를자가 없지 않을까.

일단 그야말로 계곡 한가운데라 산이 둘러싸고 있어서 정말이지 "이세계에 내가 들어와있구나"하는 느낌을 주는 것은 지산이 최고인데다가, 사방에 나무가 있으니 아무리 더워도 피신할 곳이있다. 그리고 잘 살아붙어있는 잔디들이 있어 지열이 마냥 나를 덮치지도 않고... 일단 기본적인 기반시설(물품보관소, 화장실, 기타 부대시설)이 갖추어진 공간이다보니 다른 곳보다 훨씬 쾌적하다. 공연장간 동선도 일직선으로 되어있어 최적이고- 음간섭도 없고. 하앍. 여기가 살아서 보는 천국이구나 하고 싸돌아댕김 ㅠㅠ


초반 무대들은 일찍 도착해서 나무밑에 돗자리 깔아놓고 앉아서 즐기면서 봤는데 중간에 비가 너무 와서 카메라들 간수하느라 다 싸들고 물품보관소에 짐을 때려맡김. 전날 펜타는 일반적 페스티벌이 그렇듯 물품보관 5000원 재보관 2000원인데, 여긴 그냥 코인라커다. 제일 작은 라커는 한 번 맡기는데 1000원이고, 몇 번을 다시 써도 상관이 없다. 아주 유용하게 잘 활용함.


스트라이커스, 안녕바다 등의 무대를 보며 돌아다니다가 와이낫 공연 전에 톡식 공연을 보러 나는 일단 드림스테이지로 이동. 근데- 비가 슬슬 오기 시작하는데 두시 반에 시작해야 할 공연을 안하고 계속 딜레이가 된다. 어라, 나 와이낫 보러 가야대 얘들아 얼른 시작해 ㅠ0ㅠ 하면서 혼자 조바심을 내는 와중에 15분여 딜레이 이후 폭우와 함께 톡식 무대 시작. 카운트다운과 페로몬을 듣고 바로 걸음을 돌려 나와야했다. 가지마오와 주단이 이어지는 듯 했으나... 나는 와이낫을 봐야해 얘들아 ㅠㅠ 하고 울며 걸음을 옮김. 게다가 캠코더가 너무 젖어서 고장날까봐 겁나서 어쩔 수가 없었다. 다시 물품보관소에 캠코더마저 때려넣고 월드스테이지로 빠르게 걸음을 옮김.


작년 펜타는 탑밴드빨로 초청이 된거였고, 정식으로 락페에 초청된 건 이번이 처음인데 제대로 보지를 못해 영아쉽지만 어쩌겠냐는. 다음을 기약해야지.

그래도 주변에서 남자들이 멋있다 멋있다 하는소리를 들으니 뿌듯하고 좋더라 ㅎㅎ


대망의 와이낫. L양이 펜스앞에 자리를 잡고 있다가 나에게 양보를 해주어 그야말로 머리풀고 뛰어놀기를 시전했다. 생각해보면 처음 보러갔던 단공부터 단 한번도 와이낫 공연을 카메라나 캠 없이 본 적이 없는데 이번이 처음으로 머리풀고 뛰어놀면서 본 공연인거지. 아 정말 신나고 좋더라. 전날 타틀즈 무대에서 42곡을 부르느라 목상태가 그닥 좋지 않았던 상규형님은 그래도 스피릿을 불태우며 멋진 무대를 선사했고.. 멤버 5명 중 4명이 상탈을 이룩하는 쾌거를. 담번에는 대우오라버님도 꼭 합류하시는걸로. ㅋㅋㅋ


그리고 어반자카파는 쉬고, 시나위때 다시 무대로 가서.. 또 자연스럽게 펜스를 잡았다;;;; 아니 사람들이 공연 하나 끝날때마다 쭉쭉 빠져. 앞자리에 욕심이 한톨도 없어. 어쩜 그래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래서 더욱 행복했던건가 -_- 여튼, 덕분에 앞에 불태웠던 이틀때문에 몸이 정상이 아니란 것도 잊고 또다시 해드뱅잉에 점핑에 샤우팅에 온갖 난동은 다 부리면서 시나위 공연을 즐겼더랬다. 새 보컬 노래 잘하더라. 헤어스타일이 예전 태현이랑 너무 비슷해서 깜짝깜짝 놀라긴 했지만 ㅎㅎ 정말 무대를 즐기는 듯 한 대철형님 너무 보기 좋았고... 현송이 드럼은 정말 신선했고. 어이고 정말 박력있게 치더라 ㅎㅎ


인상깊었던 건, 다음 무대를 준비하던 Switchfoot.


내가 보던쪽 사이드에서 다음 무대를 준비하는 팀의 세팅이 보였는데, 외쿡 오빠들이 왔다갔다하면서 드럼도 셋팅하고 기타도 여러대를 들고다니고 바삐 움직이더라. 보통 외쿡 오빠들은 스탭들이 나와서 악기 세팅하고 음향보고 하는 터라 밴드 멤버들이 아니라 스탭들이겠거니(그들의 음악은 들어보고 갔지만 얼굴은 몰랐거든;) 했는데 나중에 나와서 공연하는 걸 보니 멤버들이었다. 악기 셋팅을 해놓고 공연하는 시나위를 내내 유심히 보더니 스피커 사이로 비집고 나와서 관객들의 반응도 살짝 살펴보고 하는 모습이 되게 진지해보이고.. 또 초청받은 나라의 레전드와 그 나라의 관객들을 존중하는 것 처럼 보여서 좋았다.


그리고, 그들의 공연 또한- 첫인상의 탓이라기에는 지나치게 좋았다. 시작부터 객석으로 뛰어내려와 한 번 관객들을 헤집고는 맨 앞에있는 관객 한 명의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는데 정말 울컥, 하는 감동이. 내내 유려한 연주와 좋은 곡의 향연 속에 넋이 나가서, 뒤쪽에 잔디밭에 돗자리 깔고 보다가 나도 모르게 일어나서 서서 그들의 무대를 영접했다. 앞에 나가서 보던 L양이 돌아와 자미로콰이에 대비해서 체력 아껴두라니까 일어났다고 구박을 할 정도로 ㅎㅎㅎㅎ


뭔가, 제대로 사전정보를 챙겨가지 않은게 미안해질만큼 좋은 무대였다. 다시 돌아온다면 찾아가고 싶을 정도로. 덕분에 지금 내 플레이리스트는 Switchfoot 천지. ㅋㅋ


하여 드디어 자미로콰이의 시간이 도래하고... 100분동안 지산은 그대로 낙원이 되었다.

사실 자미로콰이 광팬인 L양이 앞쪽에서 보고싶다고 해서 펜스 안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는 한시간을 버텨서 기다렸는데, 정작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사람들이 흥분해서 팔을 올리고 뛰기 시작하니 아무것도 안보이는거다. ㅎㅎ (당연한거지만;) 때문에 그냥 뒤로 빠져나와서 사람들이 좀 적은 사이드로 나왔는데- 훨씬 시야도 좋고 소리도 좋고 놀기도 좋고. 그때부터 신나는 막춤타임. ㅎㅎㅎㅎㅎ 도대체 그 음악을 듣고 춤을 안출 수가 없단 말이지. 신나게 뛰고 돌고 흔들고 노는데, 우리 주변이 완전히 춤판이더만. 그 와중에 정줄놓고 노는 사람들을 보며 뒤집어지게 웃기도 하고 우리도 신나게 춤추고. 방금 전까지 체력이 바닥나서 허덕이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신나게, 정말 신나게 뛰어 놀았다. 


뒤쪽까지 꽉 채워 늘어서서 그렇게 자미로콰이의 음악을 즐기며, 혹은 이 공간안에서의 음악을 즐기며 행복해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정말 낙원이 따로 있나 싶더라. 이 행복한 밤을 오래도록 기억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벅찬 마음을 꽉꽉 눌러담고 돌아왔더랬다. 






그래, 즐기고 놀자고 하는 취미생활이다. 팬질도 그 중 일부에 불과하니.... 무리하지 말고, 자존감 무너지지 않는 선에서, 민폐끼치지도 말고, 혼자 사부작사부작 알아서 잘 다녀보자꾸나. 다신 이런 무리한 짓 하지 말자. 심지어 무리하고 후회도 끓어 넘쳤어. 니가 언제 다시 포르노그라피티를 볼거야. 아직도 아까워 미쳐버릴 것 같음 ㅎㅎ


다음주에 있을 슈퍼소닉과 씨티브레이크까지 거치고 나면 나의 여름은 이제 끝.

심지어 뮤즈와 메탈리카의 협공이다. 가슴 벅차게 기다려보자꾸나. 으힛.








덧.


어반자카파 공연때 우리 자리에서 밥을 산같이 쌓아놓고 처묵처묵 하고 있었는데 지나가는 황베...

반갑게 불러 인사를 하니 마주 인사를 해주면서 바로 하는 말이 "어제가 부산이었어요?" 다...

아뇨 어제는 펜타요.. 그제가 부산이요... 라고 말하고보니 뭐 환장하게 쪽팔린거지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황베가 어케 내 이 미친 일정을 알지 ㅠㅠ 라고 생각해봤자, 님아 너 페북 친구거등요;;

.......................망신스러워. 다신 안해 엉엉 ㅠ0ㅠ

(월요일 레슨가서 골골하다가 슨샌님한테도 혼났다. 그러게 부산을 왜갔냐고. 보는사람마다 다 머라해 앍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