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랜만에 간 좋아하는 클럽에서 재미나게 공연을 보다가.... 안녕바다와 타틀즈, 정말 좋은 두 팀을 남겨놓고 나왔다.
특히 타틀즈는 정말 오랜만에 보는 공연인데다가 정말 좋아하는 밴드라서 영상 찍고 놀며 즐기다 오고 싶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 털고 나온 건 순전히 이 때문이었다. 슈스케 생방을 보기 위해서. 이전에는 한 시즌도 제대로 보지 않았던 이 방송을 보기 위해서.
(덕분에 밴드맨들 수두룩하게 쉬고 있던 클럽 앞에서 딕펑스 빠 인증을 제대로 당하고 도망오긴 했지만;;)
당연한 사실이겠지만 나는 딕펑스 팬이다.
이름만 알고 노래도 대충 몇개만 들어보고 그런 밴드가 있다, 홍대 아이돌이라며 그네들이? 이런 정도의 정보만 가지고 있던 내가 딕펑스에게 빠져 공연을 챙겨보고 다닌 건 단 한 번의 라이브 때문이었다. 작년 9월달에 보았던. 그 것도 단독공연도 아닌... 내가 좋아하는, 혹은 관심있던 밴드들이 8,9팀 정도 쏟아져나왔던 그 단체 공연에서.
밴드의 음악이 귀에 들어오게 되는건 여러가지 요인이 있다. 멜로디가 엄청나게 좋거나, 색깔이 확실하다거나, 음악 스타일이 독창적이라거나, 합이 환상적으로 맞아떨어진다거나.... 딕펑스는, 그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는 팀이었다. 일단 무엇보다도 기타도 없는 밴드가 그렇게 임팩트 있는 무대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일종의 충격이 되기도 했었다. 기타가 디스토션 이빠이 넣고 피치로 달려가면서 밴드들이 우와아앙-하고 같이 달리는 음악과 무대를 어린시절부터 보아오며 길들여지고 익숙해지고 열광했던 나니까, 딕펑스를 좋아하게 된 것도 스스로에게는 일종의 사건에 가까운 일이긴 했지.
그네들이, 클럽 공연을 하면 고정 팬들을 꾸준히 끌어모으고 그래도 이바닥에서는 나은 환경에서 공연을 한다고 거론되곤 했던 그네들이 슈스케에 나간다고 했을 때 난 그냥 마냥 잘됐으면 하는 마음 뿐이었다. 올해가 되면서 자꾸 군대얘기를 여기저기서 꺼내기 시작하고 그에 따른 불안감을 알게모르게 드러내는 "내 밴드"가 얼마나 안타까웠겠는가. 어린시절부터 음악에 대한 꿈을 안고 살아오면서 여기까지 달려왔는데 군대를 다녀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한다는 불안감, 그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확신. 그 것을 타개하기 위하여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올라간 무대다. 왜 응원을 하지 않겠는가. 작은 클럽 공연에서 가족같이 공연하고 홍대 길거리를 지나다가 마주쳐서 깜짝 놀라놓고도 아는체도 못하고 지나치고... 이런 에피소드들은 이제 불가능해지겠지만, 더 큰 무대로 나아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네들의 음악을 알릴 수 있는 기회다. 못하는 아이들이면 말도 안하겠는데, 저런 실력을 가진 애들이? 척하면 착하고 무대가 뽑아내지는 밴드가?? 당연히, 응원할 수 밖에.
어제 그들의 저 공연을 보면서 마지막에 태현이가 울컥하는데 나도 앉아서 펑펑 울었다.
이 노래를 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가사를 곱씹으면서 그렇잖아도 태현이가 이 노래 부르면 나도 멀쩡하게 듣기만 하지는 못하겠구나 했는데... 역시나가 된거지. 그간 관객없는 무대에서 시작해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지내온 세월이 6년이다. 20대 청춘을 다 바치면서 해온 이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났을테고... 그 시간을 다 알지 못하는 나에게도 그 마음이 전해져 울컥하며 감동이 올 정도인데, 연주하고 노래하는 그네들은 어느정도였을까. 벌벌 떨리는 손으로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는 현우를 볼 때부터 뛰던 가슴은 마지막에가서는 정말 터져버릴 정도로 벅차오르고야 말았다지. 아마, 그 무대를 본 중 많은 사람들도 그런 감동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 무대가- 감동을 다 떠나서 기술적으로건 음악적으로건 흠잡을 것 없던 그 무대가, 정준영의 "그 것만이 내세상"과 유승우의 "말하는 대로"에 밀렸다.
그들의 재능이나 실력을 폄하하자는건 아니다. 단, 너무나 자명하게 드러난 이 날 무대의 수준 차이에도 불구하고 문자투표때문에 밀렸다는 것에 허탈하고 화가 날 뿐이다. 선곡표를 봤을 때 부터 무리수라고 생각했던 정준영과, 기대하고 보고 있던 유승우의 무대는 실망 그 자체였음에도, 이 날 앞서 멋진 무대를 보이고 심사위원들에게도 좋은 성적을 받은 딕펑스와 허니지가 탈락의 기로에 섰으며 기어이 허니지는 탈락하고 말았다.
문자투표는 말 그대로 민심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사람들 중 70만이 넘는 사람들이 심사위원들이 평가한 공연의 수준 차이를 뒤집을만큼 투표를 해 주었다는 얘기 아닌가.
.....이래서, 대한민국에서 소비되는 것이 아이돌 음악이고 다양한 음악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하고 대중과 소통하지 못한 채 사그라드는 건가, 하는 충격이 자고 일어난 지금도 뇌리에서 사라지지를 않는다.
주변을 둘러봐도- 좋은 음악을 들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정말이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TOP100 리스트를 아무 고민 없이 통째로 다운받아 넣어놓고 차안에서, 집안에서 오며가며 일상의 BGM으로 듣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요즘에는 노력해서 좋은 노래를 만들어도 그런 음악을 발굴해주는 사람이 없다. 때문에 자신의 음악을 알리려면 예능에 나가서 얼굴을 알리고, 이런 노래가 있다는 것을 꾸준히 음악이 아닌 "다른 무엇"을 통해 어필한 후에야 가능하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나와 잠시 화제가 된다 한들, 아이돌이 가득한 음악 순위 프로그램에 겨우 끼어서 곡을 선보인다 한들, 그들의 "얼굴"이 알려지기 전에는 대중적으로 성공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 아닌가. (국카스텐만 보더라도 음악을 듣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메이저급의 밴드였다. 그러나 대중적으로 너른 인지도를 가지게 된 것은 나가수에 나가서 그들의 노래도 아닌 "한 잔의 추억"을 부르고 난 이후이다. 슬픈 현실,이란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이겠지.)
어제 김정환-허니지-딕펑스의 무대는 아무리 다시 돌려봐도 정준영이나 유승우에게 밀릴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자신의 사연을 가지고 좋은 무대를 보여도, 겉으로 드러난 인기에는 도저히 당할 수가 없다는 것이 어제의 경연에서 여실히 드러난 것 같아 정말 마음이 너무 아프다. 음악을 예능 캐릭터가지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일개 프로그램 따위가, 이런 식으로 음악하는 사람들한테 좌절감을 안겨줘서 뭐 어쩌자는거냐고.
...라고 얘기하기엔, 이게 너무나 현실이라는거지. 맙소사.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에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던 딕펑스 멤버들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
늘 즐겁기만 한 이들이 세상에 나가서 매주 눈물을 쏟는 걸 보니- 그야말로 "세상"이란 것이 그럴 수 밖에 없는 걸까,하는 생각까지 들게 하네.
비도 오고, 참 우울한 아침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딕펑스 화이팅.
그래도 언젠가는 진심이 통할테니, 그 길 서로 어깨에 기대어 꽉 부둥켜 안고 함께 헤쳐나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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